64.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목은 다를 게 없어서

text.

 
 
01.
 
가는 길은 ‘두근두근’이었다면 오는 길은 ‘울렁울렁’이었다. 8개월 전 한국을 떠날 땐 설레는 한편 무서운 마음에 장거리 비행이 생각보다 힘들진 않았다. 12시간이 걸려 폴란드까지 간 다음 3시간 동안 환승 대기하고 다시 2시간이 걸려 덴마크에 도착하기까지 찌뿌둥한 몸을 뻗고 꼬질꼬질한 몸을 씻어내고 싶었다만. 덴마크에 들어가 해야 할 행정 처리와 집 구하기가 꼬질꼬질한 육신을 챙기는 것보다 먼저였다. 8개월이 지나 한국에 들어갈 땐 장시간 비행의 곤욕을 그대로 치렀다. 이젠 얼른 집에 돌아가도 괜찮다는 마음과 불편한 좌석에 옴짝달싹 못 하는 몸이 그렇게 괴로웠다. 집에 돌아갈 땐 덴마크가 아닌 핀란드에서 한국으로 12시간 정도 날아가야 했다. 돌아가기 전 핀란드에서 며칠 마지막 여행하겠다고 한 것이 잘한 선택인지 아닌지 모르게도 더 지친 몸으로 조금 짧은 시간 동안 비행한 거다. 비행기 좌석 모니터로 얼마 전부터 좋아하기 시작한 미국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 앨범도 듣고 오래전부터 좋아해 온 미국 드라마 모던 패밀리와 길모어걸스를 보고 이전부터 보고 싶었지만, 아직 못 봤었던 영화 바비도 봤다. 그래도 12시간은 채워지지 않았다. 많은 미디어 콘텐츠를 봐 머리가 아파질 때쯤엔 눈을 감고 기내식이 나오기만 기다렸다. 보통 착륙 한두 시간 전에 준비되는 기내식이 나온다는 건 곧 착륙한다는 뜻이니까. 착륙 안내 방송이 나올 땐 제공되는 비행기 모니터 카메라를 켜서 배에서 다리가 나오는, 다리가 땅바닥에 닿고 기체가 흔들리는, 비행기가 착륙하는 모습을 봤다. 파이널리 아임 인 코리아!
 


 
 
 
 
02.
 
나는 공항 출국장 문을 열고 터미널로 나가면 마늘 냄새가 날 줄 알았다. 누군가 한국인은 마늘을 좋아하고 음식에도 마늘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해외에 있다. 한국에 돌아와 첫 코를 내밀면 마늘 냄새가 난다고 그랬다. 실망스러웠다. 마늘 냄새는 나지 않았다. 비행기 기내 냄새와 짐 컨베이어 벨트 냄새에 지친 코가 마늘 냄새를 맡지 못할 리가 없었는데도. 말도 안돼하면서도 내심 그러면 재미있겠다 싶어 기대했었는데도. 마늘 냄새는 맡지 못했다. 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달릴 때 맡은 매연 냄새가 더 한국이었다.
 
 
 
 
 
03.
 
돌아온 한국은 뭐가 달라졌을까? 아니, 모든 게 어색해할 것 없는 일상이었다. 여전히 낡은 도보 블럭이 깔려있고 구멍 난 아스팔트 도로가 있으며 매일 똑같이 운영하는 다이소 매장이 있고 가끔 새로 생긴 옷 가게와 음식점 아니면 새 단장을 한 붕어빵 가게가 있을 뿐이다. 사람은 똑같이 움직이고 버스도 똑같이 운영한다. 달라진 건 나뿐이다. 아 이제 구글 지도나 번역기, 환율 계산기를 켜두고 다닐 필요가, 버스 노선이나 정류장도 일일이 확인할 필요가 없구나.
 


 
 
 
 
04.
 
그럼에도 나를 괴롭힌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오랜만에 작동해야 한다니 본래 기능을 멈추고 고장난 핸드폰 유심칩. 장기간 사용하지 않은 탓에 고장이 나버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도 전화 송수신을 잡지 못해 연락할 수 없었다. 결국 새 유심칩으로 교체했다. 쉬었으면 일을 더 잘해야지, 왜 아프고 그러냐. 또 하나는 도저히 맞지 않는 시차. 8시간의 시차는 생각보다 몽롱한 거였다. 유럽에서 생활시간 그대로 기상 시간, 점심 식후 시간, 취침 시간에 맞춰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 외 시간엔 정신이 너무 멀쩡하고 눈이 말똥해서 뜬 눈으로 아침 7시, 새벽 5시까지 지새우기도 했다. 저녁 8시엔 몽롱하더니 밤 11시, 새벽 3시, 새벽 5시엔 말똥하다니. 그래서 그냥 일주일 동안 한국에서 유럽 시간으로 살았다. 하루하루 잠에 드는 시간을 당기며 한국 시간으로 맞춰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