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예술과 조명의 빛, 프랑스 파리

text.

 
 
 
1.
 
파리에선 음식점 간판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알파벳 끝이 꼬부랑 휘어진 서체로 쓰인 간판이나, 닳은 금박으로 장식된 간판, 꽃과 나뭇가지가 달린 간판을 볼 수 있다. 꽃과 나뭇가지가 달린 간판은 유독 파리와 잘 어울린다. 간판 말고도, 길거리에 내놓아진 음식점 테이블에 길거리를 바라보며 앉아있는 사람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사람 두세 명이 나란히 걸어가기도 벅찬 좁은 도보길 위에도 굳이 야외 테이블이 나와있다. 그 앞을 지나갈 때면 야외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척을 하거나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보이는 거라곤, 코앞에서 지나가는 보행자와 건너편 가게와 건물, 가끔 가로변에 주차된 자동차뿐인데. 동네 골목에 있는 음식점도, 문학가와 예술가, 철학가의 아지트였던 유명한 음식점도, 마치 서로 경쟁하듯 야외 테이블을 꺼내둔다. 파리에선 왜 야외 테이블에 앉는 걸 즐길까? 왜 의자는 항상 길거리를 향해 있을까?
 

음식점 간판
음식점 야외 테이블


 
 
2.
 
파리에선 책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읽지도, 소리 내어 읽지도 못하는 언어로 쓰인 책을 보는 일은 생각보다 지루하다. 책이 하는 이야기를 전달받을 길이 없다. 널리 알려진 작가가 쓴 책을 찾거나, 눈길을 끄는 표지를 가진 책을 찾거나, 책 안에 숨겨진 삽화를 찾는 일밖에 할 수 없다. 아니면 팔 한쪽에 고른 책을 끼고 다른 책을 들여다보는 사람이나, 진열된 책을 들었다 놓길 반복하는 사람이나, 관심 있는 코너에서만 서성거리는 사람을 구경하는 일밖에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쌓인 책을 구경하는 게 뭐가 재미있다고, 그렇게나 서점을 찾아다니게 된다. 유독 파리엔 서점이 많았는데, 교보문고처럼 비닐이 씌워져 있고 하얀 종잇장을 가진 책을 파는 서점보단 책등에 먼지가 쌓여있고 종잇장 모서리가 누렇게 변한 책을 파는 서점이 많았다. 누가 뭐래도 파리에서 가장 잘 알려진 헌 책방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은 Shakespeare and Company Bookshop 일 거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 2011’에서 주인공이 걸어 나왔던 서점이자, 영화 ‘비포 선셋 Before Sunset, 1996’에서 주인공이 북 투어를 열었던 서점이다. 현실 속 셰익스피어 서점은 구경꾼에 둘러싸여 있다. 서점과 고서적을 둘러보기 위해 사람은 서점 앞 도로를 따라 줄을 서서 기다리고, 긴 줄에 지친 사람은 서점 앞 공원 벤치에 앉아 기다린다. 반면 나는 긴 줄을 기다리기 싫어 서점을 둘러보길 포기하고 다른 거리를 돌아다니길 선택했다. 셰익스피어 서점과 파리 소르본 대학교 캠퍼스, 파리 5구 중심지 사이를 돌아다니면 곳곳에 숨은 서점과 골동품 상점을 발견할 수 있다. 비슷한 색으로 칠해져 있는 건물 사이 서점은 홀로 빨간색, 파란색, 고동색으로 칠해져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간격을 두고 듬성듬성 색을 보인다. 예전 사람들은, 지금 사람들은 이렇게나 많은 서점이 필요한가. 날을 잘못 고른 것인지, 대부분의 서점이 영업하지 않아 안을 둘러볼 순 없었다. 다음엔 좋은 날을 골라 가봐야지.
 


 
 
3.
 
파리에선 또 미술관에 모인 작품과 사람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루브르 미술관은 작품보다 사람이 더 많아 사람 머리에 반쯤 가려진 작품을 보는 일과 유명 작품을 보기 위해 몇 분 기다리고 다음 사람을 위해 맥도널드 드라이브 스루처럼 얼른 작품을 먹고 떠나야 하는 일이 당연하다. 루브르 미술관과 오르세 미술관에 찾아오는 관람객을 이끄는 가이드와 투어 군단을 피해 다니기도 하고 은근슬쩍 군단을 따라다니며 작품을 찾아가기도 하고. 마치 미술관이 아닌 테마공원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작품을 각자 방식으로 즐기는 사람을 보면 나는 나대로 즐거워진다. 본인보다 작은 작품을 고개를 쭉 빼며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사람이나, 본인보다 큰 작품을 올려다보고, 작품을 중심에 두고 돌며 관찰하는 사람이나, 팔짱을 끼거나 손을 뻗으며 작품 앞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나, 작품 앞에 서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나, 각자 다른 곱씹는 방식을 보는 것도 미술관 관람의 일부다. 미술관 밖에 놓인 사람을 보고자 한다면, 루브르 미술관 광장에서 피라미드 건물을 손으로 집는 자세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보인다. 퐁피두 미술관 광장에서는 미술관 입구 쪽으로 기울어진 광장 바닥에 앉아 책을 읽거나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이 보인다. 조용하고도 소란스러워야 하는 곳은 미술관일지도.
 

오르세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루브르 미술관
루브르 미술관
루브르 미술관 광장
퐁피두 미술관
퐁피두 미술관


 
 
4.
 
파리에선 예술가의 흔적을 따라다니는 재미가 있다. 하루는 여행 동행을 만나 같이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든든히 먹고 나서는 음료수를 사들고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향했다. 몽마르트르 언덕은 사람들이 주로 일출이나 일몰을 보거나, 피크닉을 하기 위해 찾는 곳이다. 예전에 파리에서 몇 달 머물면서 몽마르트르 언덕의 숨은 모습을 알게 되었던 동행 분을 따라 깜깜하게 어두워진 길을 올랐다. 언덕을 오르는 길에는 나 같은 관광객은 흔히 찾아볼 수 없었고, 늦은 저녁 식사와 술, 담배를 즐기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늦은 시간에도 파리지앵의 야외 테이블을 향한 사랑은 식지 않았고, 심지어 기울어진 언덕 위에 테이블을 두고 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도 있었다. 식당가를 따라 언덕길을 올라가며, 파리 도심의 집값이 비싸진 뒤로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살곤 했다는 몽마르트르 이야기도 듣고, 그 예술가들이 어울리곤 했다던 카페도 구경했다. 과거 예술가들이 모였던 몽마르트르엔 이제 많은 음식점이 광장을 두고 모여있다. 꽃이 달린 장식은 물론이고 붉은 조명과 사람이 광장을 채웠다. 기타로 재즈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는 오늘날에도 음식점에서 공연을 하고, 다른 음악가와 소통하며 밤을 보냈다.
 

몽마르트르 언덕 음식점
재즈 공연이 있던 음식점



 
 
5.
 
해가 지는 파리와 해가 지고 난 뒤 어두워진 파리는 샹젤리제 거리와 센강을 가로지르는 바토무슈에서 보시길! 파리 도시의 권력 구조의 중심인 개선문과 샹젤리제 거리가 어떻게 사람과 관계를 맺는지 주황빛으로 물든 하늘과 함께 볼 수 있으니. 노랗고 파란빛으로 물든 파리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 누구는 내가 못해본 해가 진 센강에서 좋은 음식과 사람과 함께 담소 나누는 일을 해주시길.
 

샹젤리제 거리
샹젤리제 거리
센강 바토무슈
에펠탑 공원
에펠탑 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