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text.
1.
해외 인턴을 어떻게 준비했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시점에서 기억을 더듬어 써본다. 회사 조사부터 고용 제의를 받을 때까지 4개월 정도 걸렸다. 그땐 마음 급해봤자 마음만 급하지 실제로 일을 급하게 진행되지 않으니,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아도 하루하루가 시간 낭비 같았다. 잠깐 인턴으로 일했던 시간, 단기 아르바이트를 다녔던 시간, 고향 친구와 만나는 시간, 가족이랑 밥 먹고 운동하고 책 읽고 생활하는 시간 빼고는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던 거 같다. 비자 조사도 해야 하고, 어떤 회사가 있나, 조사도 해야 하고. 나는 어떤 회사에 가고 싶어 하나,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나, 왜 가고 싶어 하나, 가서 얻을 게 뭐가 있다고 가나, 고민도 해야 하고. 이 사람은 이렇게 잘하는구나, 이런 걸 잘하는구나, 그럼 나는 어떻지, 나는 어떠해야 하지, 고민도 해야 하고. 얼마나 많은 회사가 나에게 고용 제의를 하든 말든 신경 쓰지 말고, 딱 100개 회사에 지원서 넣어 보겠다, 라는 마음으로 엑셀을 열어 회사 리스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2.
우선 내가 아는 건축 회사를 적었다. 당연히 100개를 채우려면 한참 남았지. 구글에 무작정 각 나라 수도에 있는 건축 회사를 찾아 적었다. 물론 영어 사용이 가능한 회사로 제한해야 했다. 그렇게 리스트에 적힌 건축 회사 수가 80개쯤 되었다. 회사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로 가보고 싶은지, 어느 나라로 가야 할지, 후보군을 추리기 시작했다. 아마 이때 네덜란드, 영국, 덴마크로 후보지가 좁혀졌었다. 여러 이유와 선호를 따져보고 덴마크에 가야겠다고 정한 뒤로, 덴마크에 있는 회사를 더 알아봤다. 그렇게 덴마크 건축 회사 리스트가 30개쯤 채워졌다. 건축 회사 공식 홈페이지에서 지원서를 보낼 연락처와 지원 양식, 지원 시기, 회사의 프로젝트 성향과 특징 등을 찾아 리스트에 덧붙였다. 회사에 대한 선호도와 우선순위도 덧붙여 회사 리스트를 정렬했다. 회사마다 요구하는 지원 양식과 지원서 용량, 프로젝트 성향이 다르다 보니, 막막하기만 했다. 분명 밝은 해 아래에서 컴퓨터를 켰는데, 어두운 밤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아빠는 밤에 컴퓨터 모니터에 회사 홈페이지를 잔뜩 열어놓고 조사하는 척하며 아무 생각도 감정도 없이 스크롤만 올리고 있는 나에게 슬쩍 다가오곤 했다. 수많은 이미지와 함께 우리가 이런 멋진 걸 만들었다, 자랑하는 건축 홈페이지를 슬쩍 쳐다보며 어유, 건물이 색다르게 생겼네, 한국이랑 많이 다른가, 하며 관심을 보이곤 했다. 그러곤 어디 취업 됐어, 어디에서 연락 왔어, 하고 물어보곤 했다. 아빠, 아직 지원도 안 했어...
2.
회사에서 요구하는 지원 서류는 다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서류가 있다. 주로 CV, Curriculum Vitae와 CL, Cover Letter나 Motivation Letter, 또 그리고 특정 용량 미만의 포트폴리오를 요구한다. 가끔 선택 사항으로 추천서, 개인 사진과 영상, 대표 프로젝트의 이미지, 성적 및 학적 증명서 등을 요구한다. 처음엔 CV는 뭐고 CL과 Motivation Letter는 뭐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이해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CV는 이력서처럼 기본적인 개인 정보와 학력과 경력을 설명하는 가벼운 서류다. 보통 한두 페이지에 단답형, 단 문장, 명사형 등으로 적는다. Motivation Letter는 자기소개서처럼 지원 동기와 본인 능력에 대한 설명 등 문단형, 서술형으로 적는다. CL은 한두 페이지 안에 간단한 자기소개와 지원 동기를 적고 어필할 수 있는 본인 능력을 리스트처럼 적는 서류다. 개인적으로는 CL과 Motivation Letter의 차이점을 찾는 게 가장 어려웠다. Motivation Letter는 분량에 제한이 없고 조금 더 자기표현에 자유로운 서류고, CL은 CV와 Motivation Letter 사이에 있는 서류라고 이해했다. 다시 말해, CV보다는 서술적이고 상세한 정보를 주는데, Motivation Letter처럼 긴 정보를 주진 않고 요약 정보를 주는 서류다.
3.
완벽한 포트폴리오를 목표로 잡고 수정하면 평생 끝나지 않을 걸 알기에, 혼자 마감일을 정해두고 작업했다. 우선 이전에 만들어 왔던 포트폴리오를 수정하고, 수정하고, 수정했다. 작업했던 프로젝트의 스토리텔링을 다잡고, 그래픽 작업을 수정하고, 포트폴리오 구성을 반복해 수정했다. 적당한 수준까지 프로젝트 작업물이 수정될 때까진 포트폴리오 작업에 집중하다가, 그 뒤론 회사 지원과 포트폴리오 수정 작업을 반복했다. 이게 어떻게 운영되었냐 하면, 먼저 2~3주 간격으로 마감일을 정해둔다. 정해둔 마감일까지 회사별로 CV와 CL을 작성하고, 포트폴리오를 그동안 발전시킨다. 완성도와 상관없이 마감일이 되면 작업 중인 파일을 닫고 지원서를 보낸다. 물론 반복되는 수정과 지원, 답 없는 회사에 지칠 때도 있었기에, 매번 마감일을 지키며 지원했다고 할 순 없다. 적어도 이 방법 덕분에 여러 번 수정 작업을 거치고 다시 지원할 동기를 얻기도 했다. 한때 마음가짐이 느슨해졌을 때, 그래도 해야지, 계속 문 두들겨 봐야지, 하고 잔잔히 응원해 주는 엄마 덕분에 또 지원할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뜬금없는 날 뜬금없는 시간에 인터뷰 오퍼 메일을 받았다. 보통 지원서를 보내면 바로 자동 응답 메일이 오거나, 1주일 정도 지나고 나서 거절 메일이나 인터뷰 오퍼 메일이 오거나, 아무 답장도 오지 않았다. 보통 이 시간에 오던 메일이 없는데, 왜 알람이 울리지, 하며 확인한 메일함에 지원한 회사 이름이 적힌 메일을 본 순간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하던 건 아직도 기억난다. 메일을 읽어 내려가는 데 손에 땀이 나고 그랬다. 마침 집에 들어온 엄마한테 제일 먼저 인터뷰 오퍼 소식을 말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4.
이제 문제는 인터뷰였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는 의무교육, 대학교는 면접이 없는 전형으로 입학했고, 면접 없는 교내 및 교외 활동에만 참여해 온 사람으로, 이전엔 인터뷰다운 인터뷰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경험 없는 인터뷰를 해야 하지, 영어로 해야 하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링크드인처럼 기업 및 취업 정보를 공유하는 플랫폼은 Glassdor에서 회사 인터뷰 후기를 볼 수 있다길래, 그나마 걱정을 덜었다. 포트폴리오에 있는 프로젝트를 어떻게 설명할지, 추가 질문엔 어떻게 대답할지, 답변을 작성하고 연습했다. 물론 백지가 된 머리로 인터뷰를 봤지만. 회사에서 현지와 한국 시차 및 개인 일정을 고려해 줬기에 적당한 시기에 인터뷰할 수 있었다. 인터뷰는 약 한 시간 동안 온라인으로 진행되었고, 생각보다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던, 인상적인 인터뷰였다. 인터뷰를 마친 뒤 하루 정도 지난 뒤, 인터뷰 팔로우업 메일을 보냈고, 곧바로 1주일 안에 최종 결정을 알려주겠다고 메일이 왔다. 그렇게 1주일이 지나고 고용 제의를 받았다.
5.
제의를 수락한 뒤로는 비자 발급을 위한 과정이 이어졌다. 회사와 계약서를 작성하고, 비자 발급에 필요한 기타 서류를 준비해야 했다. 비자를 발급하는 데 드는 돈이 억울했지만, 돈이 죽죽 새어 나가는 통장을 보면 살짝 울적해졌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비자 발급을 거절하는 경우는 없다고 하지만, 확실히 하고 싶어 불확실한 정보를 확인하는 데에 시간을 가장 많이 소비했다. 이리저리 글을 검색하고, 이리저리 경험해 본 사람에게 검색하고, 현지 기관에 연락해 일주일씩 기다리며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걸 하나씩 지워나갈 수밖에 없었다.
6.
해외 인턴을 준비할 땐 몰랐던, 지금에서 생각해 보니 놓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과거의 내가 해외 진출을 지원해 주는 국가 장학금 제도를 알았으면 좋았을 거다. 정부가 해외에서 일하거나 거주하려는 2~30대를 지원해 주는 장학금 지원제도가 있다. 그때 나는 내가 지원 시기도 놓쳤고, 지원 자격도 안 맞는다고 생각해 내 고려 대상에서 제외해 두고 있었는데, 아마 지원을 받았으면 여러 측면에서 더 좋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