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하루와 삼일, 스위스 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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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위스 바젤은 나에게 경유 도시였다. 프랑스 소도시 롱샹Ronchamp과 독일 소도시Weil am Rhein을 모두 가고 싶었던 나에게, 롱샹과 웨일 둘 중 어느 곳에서도 하룻밤을 묵고 싶지 않았던 나에게, 며칠 머물기 적합한 곳이었다. 바젤에서 롱샹까지는 기차와 버스를 타고 꼬박 4시간이 걸리고, 웨일까지는 기차를 타고 1시간이 걸렸다. 바젤에서 머물렀던 시간은 숙소에 있던 시간을 더해도 아마 하루밖에 되지 않을 거다. 덕분에 다른 곳으로 떠나기 위해 잠깐 머물렀던 바젤은 나에게 다음을 위해 많은 것을 남겨둘 수 있었던 도시다. 여행을 계획할 때 우선순위에서 밀려 여행 일정에 포함되지 못한 장소를 지나치며, 저건 나중에 가봐야지, 저건 못 봐서 아쉽다, 혼자 말하길 반복했다. 많은 것을 남겨둔 만큼, 가장 낭만적으로, 추상적으로 남아 있는 도시다.
 
 
 
2.
 
바젤은 강과 함께 살아간다. 강이나 호수 없는 도시가 얼마나 되겠어, 싶을 거다. 특히 유럽에선 도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강이나 호수를 보는 게 너무 흔하고 흔한데. 한국의 수도 서울만 봐도 한강이 도심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는데. 그럼에도 바젤은 강과 함께 살아간다고 말하고 싶다. 강을 바라볼 수 있는 산책로에서 강물 바로 옆에 몸을 눕히고, 강물에 손과 발, 몸을 폭 담그며, 강에 가장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도시다. 강 주변에 있는 음식점에서는 강을 배경으로 스탠딩코미디 공연을 열고, 지역행사 운영회는 강에 무대를 배처럼 띄워 음악 공연을 개최하고, 사람들은 강둑에 앉아 공연을 보고, 강변 산책로에 있는 푸드 트럭에서 음식을 사서 먹는다. 강물에 몸을 맡긴 채 수영하는 사람은 강에 그대로 스며들어 그들 삶과 배경 일부가 된다. 어느 것 하나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이 없고 그대로 사는 것처럼 보인다. 푸르고 검은 강변이 이렇게 정겨워 보였던 적이 있나.
 

강변 음식점
강변 음악 공연
강변에서 노는 사람
강에서 수영하는 사람

 

 
3.
 
동네에서 안 가봤던 길을 골라 산책할 때에도, 여행에서 계획하지 않았던 장소를 즉흥적으로 가볼 때에도, 예상하지 못하고 마주친 장면은 더 기억에 오래 남는다. 인간은 착각의 동물이라고, 매일 하는 일과 마주치는 일도 일시적인데 ‘우연히 마주친’ 장면이 주는 일회성과 쾌락만 알아보고 진한 자극을 받는다. 때론 그 우연이 하루와 여행, 도시의 이미지를 좌우한다. 비록 짧게 머물렀어도, 바젤에서 그런 우연을 만날 수 있었다. 강에서 부표에 몸을 맡긴 채 수영을 하고 물 위를 떠다니는 사람을 본 거나, 뮌스터 성당 앞 광장을 빌려 야외 영화를 즐기고 있는 사람을 본 거나, 다리를 건너다 달을 바라보며 밤을 즐기는 사람을 본 거나. 하루를 넘치도록 좋게 만드는 우연이다.
 

밤, 달, 다리
야외 영화관
야외 영화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