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text.
1.
스위스 바젤Basel에서 프랑스 롱샹Ronchamp으로 여행을 떠나봅시다. 근대 디자인의 명소, 롱샹 성당Ronchamp Chaple이자 노트르담 뒤 오Notre-dame du Haut를 가봅시다.
2.
프랑스 소도시인 롱샹을 왜 스위스에서 가야 했을까? 롱샹은 스위스 국경과 가까운 프랑스 동부에 있다.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 파리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스위스 바젤에서 출발하는 게 더 가깝다. 프랑스를 떠난 뒤 다시 프랑스 땅으로 들어가는 건, 바젤에서 롱샹으로 떠나는 건 문제 될 건 없다. 문제는 기차와 버스 환승을 여러 번 거쳐야 한다는 거다. 먼저 바젤에서 기차를 타고 프랑스 소도시인 뮐루즈Mulhouse까지 간 다음, 다시 기차를 타고 다른 소도시 벨포트Belfort로 이동해야 한다. 그다음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달리고 나서야 롱샹에 도착한다. 환승 구간마다 대기 시간이 있었던지라, 아침 7시 전에 집을 떠나고도 정오가 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루에 9시간 이상을 도시와 도시 사이를 이동하는 데에만 쓴 건데, 무작정 힘들었다고만 하고 싶지 않다. 언제 또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여러 도시를 멈춰가며 볼 수 있겠어, 싶고. 언제 또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두 나라의 국경을 여러 발걸음으로 나누어 건너갈 수 있겠어,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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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뮐루즈에선 다음 기차를 타기 위해 한 시간 정도 역에서 기다려야 했다. 잠깐이라도 동네를 구경하기 위해, 역 밖으로 나가서 길을 건너고 강을 건넜다. 강 건너편에 녹색 잔디와 나무 데크가 깔린 공원이 있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 공원에서 본 빛나는 초록색이 기억난다. 초록색이 빛을 받아 노랗게 변하는 걸 볼 수 있고, 피부로 느끼는 햇빛을 눈으로 즐길 수 있었다. 덕분에 역에서 멀리 나가볼 생각도 안 하고,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다음에 탈 기차를 기다렸다. 두 번째 기차를 타고 벨포트에 도착했다. 벨포트에선 두 시간 동안 머물 수 있었다. 뮐루즈보단 나름 큰 도시였는데, 역 안에서도 밖에서도 돌아다니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스쳐 지나간 사람을 세보고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다행히 벨포트 역 근처엔 내 발을 묶어둘 만한 볼거리가 없어 조금 먼 중심지까지 갈 수 있었다. 주말 아침이라 문을 연 곳이 없는 상가 거리를 지나서, 강과 공원을 건너고, 벨포트에서 가장 유명한 사자상을 보고, 주거 단지까지 구경했다. 여유로운 주말 오전을 즐기는 노인과 가족 사이 낯선 동네를 기웃거리는 낯선 이는 나밖에 없었다. 어떤 사람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지나가고, 어떤 사람은 눈을 마주치곤 웃어주며 지나가고, 어떤 사람은 관심도 없다. 여기까지 걸어가면서 문 닫은 옷 가게와 사자상 말곤, 볼 거라곤 불 꺼진 음식점과 철문 굳게 닫힌 역사 깊은 성과 박물관뿐이었다. 블록마다 화려하고 볼 게 많아 여행 일정표가 차고 넘쳤던 파리와 비교도 안 되게 소박하고 조용했다. 그럼에도 벨포트가 나름 좋았던 이유는, 파리에선 볼 수 없었던 여유롭고 단란한 사람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소도시 구경의 재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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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역에서 산 게임 잡지를 팔에 끼고 드디어 롱샹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수학여행 갈 때 타는 버스만 한 크기의 버스가 다섯 명 남짓의 사람을 태우고 달렸다. 나는 롱샹에 있는 유명한 건축물 하나 보겠다고 이렇게 산골 도시까지 간다지만, 다른 사람은 어떤 목적으로 여기까지 오나 싶었다. 내심 나랑 같은 데 가나, 그럼 덜 외롭겠다, 생각하면서도 다 나랑 다른 게 갔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창밖만 내다봤다. 비탈길을 올라가는 버스를 따라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고 신발 신은 발이 답답해지기 시작할 때쯤, 롱샹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마주한 풍경은 여기가 역인가, 그냥 길 가다가 내려다 준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허허벌판인 도로 위였다. 곧바로 구글 지도를 켜서 가야 할 방향을 확인했는데, 언덕길을 30분 넘게 올라가야 했다. 나와 같이 내린 사람들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는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는 눈치였다. 나는 지도를 따라 무작정 걸어갔고, 내 뒤로 움직이는 여러 발소리가 들렸다. 어쩌다 너도 롱샹 성당 가냐, 물어보며 대화 물꼬가 트였고, 알고 보니 건축 여행을 하는 유학생들이었다. 건축과 디자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여기까지 누가 오겠어, 싶었던 ‘의심’이 ‘확신’이 됐다. 섭씨 35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에 다들 차를 타고 올라가는 언덕길을 줄지어 올라가면서 우리 옆을 오고 가는 자동차에 우리도 태워달라며 징징대고 왜 차를 대여하지 않았냐고 우린 돈이 없는 학생 아니냐면서 실없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겨우 본 롱샹 성당은 내가 생각한 것 그 이상의, 남다른 감각을 보여줬고, 어쩌면 기대보다 덜 한 감각을 보여줬다. 롱샹 성당에 대해선 나중에 할 이야기로 남겨두고 웃기고 어이없던 이야기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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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롱샹 성당에 간 건축학도들은 결코 1분 거리를 1분이 걸려 가지 않았다. 걸어가며 옆에 놓인 콘크리트 벽도 만져봐야 하고, 다르게 마감된 콘크리트를 보며 사진을 찍어야 하고, 이거 맘에 든다고 말도 해야 했으니까. 두 갈래로 나누어진 길을 지나갈 때 하나만 열려있고 하나는 막혀있다면, 막힌 길을 이전에 계획된 길이냐며, 지금 지나가는 길은 새로 만들어진 거냐고, 서로 물어봐야 했으니까. 창문과 창틀이 지붕과 어떻게 맞닿는지 들여다보고, 기둥과 구조체가 어떻게 지붕과 바닥을 들고 있는지 들여다봐야 했으니까. 또 건물 안을 돌아다닐 때면 굳이 싶을 정도로 구석까지 들어가 구경해야 했다. 구석까지 들어가봤자 ‘관계자 외 출입 금지‘ 스티커가 붙은 문이나 창고처럼 쌓인 물건만 보는 데도 굳이 그런다. 작은 창문 앞에선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낮추며 창밖으로 뭐가 보이나 확인하고 그런다. 문과 창가 근처 바닥에 알 수 없이 툭 튀어나온 철제가 있다면, 저게 뭐냐고 문을 여닫아 본 뒤, 문을 고정하기 위한 홀더인 걸 확인하고 나서야 그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원하는 한 장면을 보기 위해서 한 건물 안에서 한 시간, 두 시간, 또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냥 저걸 굳이 싶은 걸 다 확인하고 사진을 찍느라 그랬다. 결코 본 걸 다 기억하진 못하고, 보는 것마다 무언가 느끼거나 배울 순 없겠지만. 그렇게 1분 거리를 5분, 10분, 한 시간으로 늘려서 봤는데도 집으로 가는 버스 시간까지 시간이 남고 남았다. 서비스 센터에서 좀비처럼 남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올라올 땐 힘들어서 보이지 않던 풍경과 건물에 그려진 벽화, 길거리에 놓인 간판이 그제서 보였다. 몇 시간 만에 다시 본 허허벌판 위에 놓인 버스 정류장에서 마지막 기다림을 보내고, 다시 네 시간을 달려 바젤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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