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text.
1.
덴마크에 오고 난 뒤로 질리도록 함께 하는 친구가 있다. 바로 감기다. 덴마크에 온 지 두 달쯤 되었을 땐가, 몸 움직일 기운도 없을 정도의 감기에 걸렸었다.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그 뒤로 감기는 지독하게도 한두 달 간격으로 나에게 찾아온다. 유럽 장기 여행을 같이 떠난 감기는 스페인 더위에 지쳐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다 스위스에서 가족을 만나고 긴장이 풀린 나를 알아차렸는지, 다시 나에게 찾아왔다. 한동안 안 찾아오더니, 이번에 지독한 놈이 찾아왔다. 감기가 코에 잔뜩 매달려 있어서, 숨쉬기가 힘들고 머리가 무거워질 정도였다. 친구와 약사가 추천해 준 약을 며칠째 먹는 중이다. 이제 숨은 쉴 수 있다. 추워진 날씨와 세지는 바람에, 아침엔 점점 더 두꺼운 옷을 집어 든다. 차가운 냄새가 나는 겨울이 오고 있다!
2.
다가오는 겨울은 건조하고도 소박하고 포근하다.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동네 플리마켓에서 손수 만든 털신을 볼 수 있다. 길거리엔 긴 코트와 스카프를 꺼내 입는 사람이 많이 보인다. 어떤 사람은 옷이나 목도리, 장갑, 모자를 짜기 위해 털실을 사 간다. 또 어떤 사람은 양초를 사 간다. 어떤 가게는 마녀와 호박 장식으로 할로윈을 반긴다. 어떤 가게는 조명과 산타 인형, 트리로 크리스마스를 반긴다. 두 달 전만 해도 새벽 5시부터 점점 밝아지던 하늘은 이제 아침 7시부터 밝아지기 시작한다. 저녁 10시가 넘어야 어두워지던 하루는 이제 저녁 7시만 되어도 점점 어두워진다. 덴마크 사람은 겨울엔 너무 춥고 어두워서 밖에 나가지 않고 주로 집에서 가족이나 친구와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사적이고 긴밀한 대화를 나눌 때면 양초를 켜두고 차 한 잔을 즐기기도 한다고 들었다. 나도 덴마크 겨울을 맞이해 양초를 샀다. 아침에 일어나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울 때나, 저녁에 해가 져서 방이 어두워질 때나, 책상과 창가에 양초를 켜둔다. 작게 일렁이는 촛불과 창문에 비치는 잔상이 몽롱하고 만족스럽다. 꽤 포근하고 잔잔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3.
덴마크의 여름엔 맑은 하늘과 덥지 않게 내리쬐는 햇살 아래에서 자전거 타는 소소한 일상이 있다. 보기 좋게 예쁜 녹색 빛 나무와 풀을 지나가며, 적당히 따뜻한 바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반면에 덴마크의 가을과 겨울엔 몸이 떠밀릴 정도로 강한 비바람이 있다. 두 다리로 걸어도 바람에 몸이 밀릴 정도로, 머리카락이 다 휘날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분다. 비바람이 불 때면, 비가 얼굴에 쏟아져서 눈을 뜨기도 힘들 정도인데, 그래도 자전거를 탄다. 거센 바람이 불 때면, 길거리에 제대로 주차된 자전거가 없고 다 쓰러져 있을 정도인데, 자전거가 덜덜 흔들리며 달리는 정도인데, 그래도 자전거를 탄다. 모든 게 당연한 듯 자연스러운 현지인 사이에서 나 홀로 B급 재난 영화를 찍는다.